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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브리북] 채사장,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데브리 2023. 6. 4. 12:31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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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서양의 그리스도교는 직선적 시간관을 토대로 한다. 그리스도교의 세계에서 인간은 탄생하고 성장하여 죽음에 이른 영원한 세계로 나아간다. 그곳이 지옥이든 천국이든 마찬가지다. 어떤 사후 세계에서나 시간은 과거로의 후퇴 없이 영원히 계속된다. 반면 동양의 윤회 사상은 원형적 시간관을 토대로 한다. 불교의 가르침에서 인간은 탄생하고 성장하여 죽음에 이른 중간 상태인 바르도를 지나 다시 탄생을 맞이한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듯, 삶도 반복된다고 믿는다

 

이러한 시간관의 차이는 역사에 대한 관점의 차이로 이어진다. 우선 직선적 시간관은 역사는 끝없이 발전해간다는 '진보적 역사관' 낳는다. 진보적 역사관에서의 역사는 직선적 시간관처럼 과거로의 회귀를 인정하지 않는다. 역사는 과거를 지나 현재를 거쳐 미래로 나아가며, 나아감은 어제보다 변화된 오늘이고 오늘보다 변화된 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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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풍자와 시사가 배제된 예능은 대중의 말초적인 재미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실제의 현실에서 눈을 돌리게 만드는 정치행위와 같다고 있다

 

20세기에 호르크하이머를 주축으로 결성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 이론은 대중매체의 오락적 기능이 갖는 부정적인 측면을 정확하게 지적했다. 비판 이론에 따르면 미디어의 오락적 기능은 대중에게 사회 체제의 압박을 숨기고 도피하게 기능한다. 미디어의 말초적인 가십거리들이 사회 변화를 가로막는 강력한 기제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커뮤니케이션의 내용'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의 형태' 문화를 결정함을 밝혔다. , 미디어의 편성 전반이 비정치적이라면 미디어의 내용이 아니라 형태로 보아 그건 정치적 제스처로 의심해볼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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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양분하는 거시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을 , 당신 앞에 쏟아지는 복잡한 현실 문제들로부터 도피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이에 맞서 스스로 판단하고 평가할 있는 힘을 얻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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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없는 대중은 사회와 미디어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고, 그들이 욕하는 대상을 같이 욕하고, 그들이 칭찬하는 대상을 같이 칭찬하며, 웃기면 웃고, 울리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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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진리의 역사에 대해 알아야 하는가? 그것은 나의 때문이다. 내가 세상이 말해주는 진리가 진짜라고 믿으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어서다. 가족과 학교와 시장과 국가와 종교는 나에게 진리가 무엇인지 친절하게 말해준다. 물론 그것이 정말로 절대적인 진리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진리가 역사적임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두렵다.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진리가 실은 진리가 아닐 수도 있음을 생각하는 것이 두렵고, 기존에 내가 진리를 위해 쏟아온 정성과 노력이 허튼짓이었을까 두렵고, 지금까지 나와 단일 진리를 공유해왔던 가족과 친구들의 눈치가 두렵다

 

어떤 삶을 선택해도 괜찮다. 기존에 알고 있던 진리를 의심하고 그로 인해 주변과 마찰을 빚더라도 다른 진리를 찾아 떠나는 인생도 괜찮고, 내가 믿어왔던 진리에 대한 신념을 굳건히 해서 이를 주위 사람들과 함께 지켜나가는 인생도 괜찮다. 결정은 당신이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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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계를 보는 구심점으로서 의식적 존재라는 것은 나에게 순간 확인되는 가장 확실한 진리다. 엄밀히 말하면 타인에게도 나처럼 의식이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타인에게도 의식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타인의 행동을 통한 추측일 , 내가 직접 타인의 의식 세계를 들여다보고 확인한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확실할 있는 최소한의 것은 내가 지금 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의식적인 존재라는 사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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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을 정확하게 그대로 다시 사는 . 당신은 삶이 어떻게 느껴지는가? 영원회귀가 사실이라면 당신은 죽음 이후에 당신이 살아온 삶을 그대로 반복해서 살아야 한다. 순간마다 느꼈던 감정을 다시 느끼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미워했던 사람들을 영원히 반복해서 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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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니체는 영원회귀 개념을 통해 정말 중요한 것은 미래의 보이지 않는 약속이 아니라 지금 순간임을 밝힌다. 영원회귀에 따르면 순간은 무한히 반복되는 속에서 무한히 반복될 것이다. 그래서 순간의 길이는 삶이 무한히 반복되는 만큼 무한대로 길어진다. 반면 인생은 100년이라는 유한한 시간일 뿐이다. 이제 순간과 인생의 길이는 역전된다. 순간은 무한한 길이를 갖지만, 인생은 유한한 길이로 한정된다

 

만약 지금 순간이 고통스럽다면, 고통은 영원할 것이다. 반대로 지금 순간이 행복하다면, 행복은 영원할 것이다. 니체는 우리에게 현명해질 것을 요구한다. 내가 지금 소모해버리고 있는 순간은 내가 영원히 반복해야 하는 시간이다. 따라서 지금 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영원히 반복될 순간을 위해 나는 삶을 창조해야만 한다. 지금 당장 내가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을 해내야만 한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은 존재, 지금 순간을 소모하지 않고 최고로 가치 있는 순간을 위해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존재가 니체가 말하는 '초인'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