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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브리북] 목수정,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데브리 2023. 6. 10. 23:21

 

 

목수정,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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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생을 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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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서도 걸려오지 않는 전화기를 기막히게 바라보며, 창밖의 비둘기들에 넌지시 말을 건네던 시절. 내가 분주히 움직여 다시 무언가를 쌓지 않으면 이대로 아무 흔적도 없이 완벽한 무로 사라져 버릴수도 있다는 생각이 구체적으로 엄습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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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르본느 어학원을 다니던 시절, 학교에서 배운 그에게 써먹곤 했다. 하루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지를 적어와 그것에 대해서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른이 되어서 이런 유치원식 교육을 받는 신선하고 흥미진진한 일이었다. 그러면서 우린 정말로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차곡차곡 되짚어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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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생활에서 정말 좋았던 한가지는 경쟁의 부재였다. 누가 과수석인지 누가 학점이 어떻게 나왔는지 서로 아무 관심도 없다. 여기에선 건강한 의미의 개인주의가 완벽하게 작동한다. 외롭지만 나와 경쟁할 뿐이다. 어제의 , 내일의 내가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분발하거나 처지거나 한다.... 불필요한 경쟁심리로 에너지낭비를 하지 않을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삶의 기준을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가치에 두게 만들었다. 당연히 성숙한 인간으로 취급받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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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독창적으로 되는 데는 약간의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타고나기 보다는 습관이고 태도다. 사회가 중심적 가치관을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사람들은 달라진다. 조금 성실해지느냐, 아니면 조금 독창적이 되느냐. 모난 돌이 정맞는다는 속담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감히 자신의 뾰족한 생각을 드러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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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투자할 시간, 투자할 , 그렇게 해서 학위가 나에게 확실한 미래를 보장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분명하고 안전한 선택을 매순간 계사해야 한다면, 순간도 인생은 자신의 것이 없다. 불만은 터뜨리고 욕망은 충족시키면서 사는 것이 건강한 삶이다. 그러나 내가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진정한 나의 욕망인지 아니면 모두가 욕망해야 하는 것이라고 정해진 일반적 욕망의 리스크일 뿐인지를 가늠해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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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자신의 앞에 놓인 좁은 선택의 틀에 괴로워하는 여성들을 때마다, 그녀들에게 다른 나라로 떠나라고 충동질했다. 프랑스에서 정해진 안온한 삶에 몸이 근질거려 하면서도 모험심 없이 눈만 뻐끔거리며 그럭저럭 지내는 프랑스 남자들을 보면서, 한국이나 일본으로 가라고 충동질했던 것처럼. 그렇게 해서 잠시 다른 질서 속에 방황하는 , 자유 속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비로소 내가 원하는 것들을 고르는 경험을 하는 , 다른 가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가치전복의 신선함을 누려보는 , 적어도 오늘 한국사회의 가부장적 요구가 내가 살아내야 하고 견뎌내야 유일한 조건이 아니라는 깨닫는 , 살면서 해보아야 경험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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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비싼 핸드백을 일률적으로 들고 다닌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자신들이 누릴 있는 다양한 선택의 자유를 저버린다는 의미다. 경제적 풍요가 도리어 최고급 메이커 제품에만 한정된 선택을 하도록 하는 족쇄가 되는 셈이다. 요동하는 시대를 거치면서 부자들은 모두 신흥부자들일수 밖에 없게 , 사회에서 독자적인 미감과 취향을 연마한 세대적 연륜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이들에게는 이른바 명품 취향이 다른 계층과 서둘러 경계를 긋고자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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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잘하면 선택할 있는 학과와 대학의 선택의 폭이 넓어져야 하지만 부분에서도 한국사회는 예외의 답을 제공한다. 한국 사회에서 공부를 한다는 의미는 조변석개하는 입시제도에 빠르게 대응할 만큼 기동력을 갖춘 학원 강사들에게서 정답 고르는 요령을 배웠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 진정한 지성과 명민함이나 세상을 통찰하는 독자적 시각을 갖추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중학교에서부터 공부 한다 싶으면 과학고나 외고를 가기 위해 줄서는 일반적이고, 미국 유학을 가서도 아이의 성적이 좋으면 무조건 하버드에 것을 원해 미국 고교 교사들이 따로 모여 문제로 회의를 한다고 한다. 영국언론은 한국이 겪는 병리현상을 두고 특집기사를 싣기도 했다. 세상 사람들 모두 쟤네 어디 아픈 같다고 수근대는 한국사회를 우리만 여전히 ', 이까짓 것쯤이야!'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