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배우고 생각하고/밑줄긋기 58

[데브리북] 세이노의 가르침

읽기 전부터 한동안 계속 베스트셀러에 올라와있는 건 알고 있었고, 세이노라고 해서 당연히 일본인이겠거니 하고 봤더니 Say No라는 필명을 쓰는 한국분이셨다. 오래전부터 인터넷 카페에 올라오거나 신문에 기고한 글들을 수정없이 그대로 엮어 만들어서인지 사실 요즘 세대가 읽기에는 너무 날것의 느낌도 있고, 직접적인 비난이나 욕설도 군데군데 섞여있어서 사실 건너뛰고 싶은 부분도 많았다. 읽어보니 왜 이 분에 대한 열렬한 팬과 안티팬이 동시에 존재하는지도 알 것 같지만, 분명 살아가는 태도나 배울 수 있는 점들이 많은 대단한 분이라는 건 확실하다. 차갑고 냉철한 사람같지만, 사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본인이 인생을 살아오며 익히고 배운 것들을 꾸준히 글로 공유해오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

[데브리북] Alain de Botton, The Course of Love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헌책방에서 사와서 읽은 책이라 아직도 가지고 있는 책. 의도한 건 아닌데 마침 당시 만나던 T와 헤어지는 시기에 읽고서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만들어 준 알랭 드 보통의 [The Course of Love]. 영문판으로 읽어서 한국어로 나온 책 이름을 몰랐는데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이라니... 이 소설은 책 표지의 느낌과는 딱인데 영문 제목과 한국어 제목은 둘다 와닿지가 않는다. - She is curious because she knows, better than most, that there is no one more likely to destroy us than the person we marry. - Life on his own had become, he realized then, u..

[데브리북] 박명우, 사람, 삶을 안다는 것

나는 누구이며 왜 사는가에 대한 물음. - 그럼에도 '나'는 '사람의 어려움', '존재의 가벼움'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상처받지 않는가? 무엇이든 다 알거 같고 무엇이든 자신 있어 하다가도 끝 모를 절망에 사로잡히게 되는 '나'는 일상적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고, 그 와중에 마주하게 되는 나는 비이성적이고 극히 연약한 모습으로 남게 된다. 이래도 우리는 '나' 자신을 넘어서는 그 무엇에 관심 없다 할 수 있는가? 심리학과 종교학의 광활한 조각이 아니라도 나는 일상에서 매 시간 죽음을 마주하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는가? 내가 공부하는 것이 내가 일하는 일터가 패러다임의 차이를 극복 못하고 사라질 때 나의 현재도 함께 없어지는 이런 황당함을 어떻게 이겨낼 건가? 우리는 내일도 모르는 것이 아..

[데브리북] 김승호, 사장학개론

작년에 너무 잘 읽었던 [돈의 속성]의 저자 김승호님의 새로운 책 [사장학개론]이 나왔길래 읽어봤어요. [돈의 속성] 읽을 때는 몰랐는데, 이 분 출판사도 가지고 계셔서 본인 출판사에서 직접 책을 내시더라구요. [돈의 속성]이 돈을 잘 관리하고 불려나가기 위해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소양 같은 걸 알려주는 책이었다면, [사장학개론]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사장으로 살아가는 분들이 알아야 할 것들에 관한 책. 겹치는 내용도 좀 있고, 간혹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사업을 하시거나 생각하시는 분들이 읽어두기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 - 장사를 하는 사람은 수입을 자신의 노동력에서 만들어 낸다. 일반적으로 성실한 오너 사장은 일반 직원들 3명 몫까지 인건비를 대신한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 수 있다..

[데브리북] 김혜남, 당신과 나 사이

-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그 어떤 힘도 행사하지 않고, 상대를 그저 따뜻한 눈길로 지켜봐 주는 것. 그의 생각과 행동들이 그가 살아 온 세월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정함으로써 그의 과거 전부를 끌어안는 것. 그러므로 그의 못나고 초라한 모습도 껴안는 것. 그렇게 아무 조건 없이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야말로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고 믿는 것들을 위해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건 나 자신이 너무나 투명해지는 일이었다. 물방울처럼, 유리처럼 투명해지는 일이었다. 스스로 속이지 않는 마음의 상태.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 봐 겁내지 않는 상태. 아닌 것은 절대로 아니라고 말하는 상태.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건 대단히 가슴 떨린다. 왜냐하면 거기까지..

[데브리북] 알랭 드 보통, 불안

- 현실에서 우리는 나라는 사람에 대하여 아주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내가 똑똑하다는 증거도 댈 수 있고 바보라는 증거도 댈 수 있으며, 익살맞다는 증거도 댈 수 있고 따분하다는 증거도 댈 수 있으며, 중요한 인물이라는 증거도 댈 수 있고 있으나마나 한 존재라는 증거도 댈 수 있다. 이렇게 흔들린다면 사회의 태도가 우리의 의미를 결정하기 마련이다. 무시를 당하면 속에 똬리를 틀고 있던 자신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고개를 쳐들며, 미소나 칭찬과 마주치면 어느새 역전이 이루어진다. 혹시 남의 애정 덕분에 우리 자신을 견디고 사는 것은 아닐까? 남의 관심 때문에 기운이 나고 무시 때문에 상처를 받는 자신을 보면,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어디 있나 싶어 정신이 번적 들기도 한다. 동료 한 사람이 인사를 건성으..

[데브리북] 목수정,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새로운 인생을 개척 - 누구에게서도 걸려오지 않는 전화기를 기막히게 바라보며, 창밖의 비둘기들에 넌지시 말을 건네던 그 시절. 내가 분주히 움직여 다시 무언가를 쌓지 않으면 이대로 아무 흔적도 없이 완벽한 무로 사라져 버릴수도 있다는 생각이 구체적으로 엄습해왔다. - 소르본느 어학원을 다니던 그 시절, 난 학교에서 배운 걸 그에게 써먹곤 했다. 하루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 열 가지를 적어와 그것에 대해서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른이 되어서 이런 유치원식 교육을 받는 건 신선하고 흥미진진한 일이었다. 그러면서 우린 정말로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차곡차곡 되짚어볼 수 있었다. - 학교생활에서 정말 좋았던 또 한가지는 경쟁의 부재였다. 누가 과수석인지 누가 학점이 어떻게 나왔는지 서로 아무 ..

[데브리북] 레슬리 가너, 서른이 되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 다른 사람이 공허하거나 쓸쓸해 보이지 않는 것은 깨지고 다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당신은 땀을 흘리기 싫어 출발선에 멈춰선 운동선수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달리고 또 달려 자신이 원하는 곳에 도착했고,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당신 눈에는 그들이 고통 없이 행복을 얻은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들이 흘린 땀방울이 모두 증발해 버린 것입니다. 결국 아무런 대가도 없이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당신에겐 집이 있고 테이블 위에 음식이 있으며, 남편이라는 좋은 남자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방황중이죠. 그것은 당신이 더욱더 많은 것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물질적으로는 만족했지만 정신적으로는 불행한 당신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몇 가지 살펴볼 것이 있..

[데브리북] 채사장,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구체적으로 서양의 그리스도교는 직선적 시간관을 토대로 한다. 그리스도교의 세계에서 인간은 탄생하고 성장하여 죽음에 이른 후 영원한 세계로 나아간다. 그곳이 지옥이든 천국이든 마찬가지다. 어떤 사후 세계에서나 시간은 과거로의 후퇴 없이 영원히 계속된다. 반면 동양의 윤회 사상은 원형적 시간관을 토대로 한다. 불교의 가르침에서 인간은 탄생하고 성장하여 죽음에 이른 후 중간 상태인 바르도를 지나 다시 탄생을 맞이한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듯, 삶도 반복된다고 믿는다. 이러한 시간관의 차이는 역사에 대한 관점의 차이로 이어진다. 우선 직선적 시간관은 역사는 끝없이 발전해간다는 '진보적 역사관'을 낳는다. 진보적 역사관에서의 역사는 직선적 시간관처럼 과거로의 회귀를 인정하지 않는다. 역사는 과거를 지나 현재..

[데브리북] 황주리, 세월

- 왜 모든 계절은 맞을 때마다 처음인 듯한 생각이 들까? 더위도 추위도 샐쭉한 봄기운도 가을의 선선함도, 모두 처음 겪는 온도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렇듯 모든 사랑도, 모든 삶의 기쁨과 고통의 순간들도, 한 번도 겪은 적 없는 새로운 처음으로 우리의 살갗에 낯설게 와 부딪힌다. 그래서 연습이란 늘 소용이 없을는지 모른다. 어쨌든 우리가 가장 열망하는 순간은 이 녹록지 않은 삶 속에서의 완전한 소통의 순간이 아닐까? - 2001년 가을, 나는 또 한 번의 생일을 맞으며 마흔네 개의 삶의 계단을 숨가쁘게 올라온 기분이 든다. 여든 개나 아흔 개에 비하면 아이들 걸음마 같을까? 아니 아흔 개나 백 개도 금세일 것만 같다. 세월이 가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건 스물다섯 살 때까지였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대학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