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배우고 생각하고/밑줄긋기 58

[데브리북] 한기연, 서른다섯의 사춘기

- 사람들이 문제를 시인하지 않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뻔뻔스러운 방법 중 하나는 스스로 자학하고 슬퍼하고 낙담하고 절망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인정은 하되 변할 의사가 없을 때 여러 가지 변명을 늘어놓거나 심지어 감정적인 협박을 하기도 한다. 정말로 변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그런 반응을 멈출 것이다. 말로만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인가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 심리학의 한 연구를 보면, 스스로 불행해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지위를 남과 비교하면서 기분 나쁜 상태가 되고, 자신이 무엇을 얼마만큼 했는가 보다는 남들에 비해 어떠한가를 더욱 중요시 여긴다는 결과가 있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어려운 퍼즐 문제를 풀도록 한 후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였다. 불행해하는 학생들..

[데브리북]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데미안]과 [파우스트]와 [설국]을 읽었고 절에서 밤새 1,080배를 했으며 매일 해질 무렵이면 열 바퀴씩 운동장을 돌았고 매순간 의미 있게 살지 않는다면 그 즉시 자살한다는 내용의 '조건부자살동의서'라는 것을 작성해 책가방 속에 넣고 다녔다. - 그 즈음 창 밖을 내다보면 뭔가 지나가는 게 언뜻언뜻 눈에 보였다. 바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이었다. - 나는 대체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큰 관심이 없다. 내가 꼭 하지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에도 흥미가 없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이 내 마음을 잡아끈다. 조금만 지루하거나 힘들어도 '왜 내가 이 일을 해야만 하는가?'는 의문이 솟구치는 일 따위에는 애당초 몰두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완전..

[데브리북] 김연수, 세계의 끝 여자친구

- 그녀는 자신이 그런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세계에서 한 발짝도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자신에게 떠날 용기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토록 바다를 바라본 것은 단지 바라볼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기억할 만한 지나침] - 지금 이 도로가 왜 막히는지 알아? 예, 라디오에서 노점상들이 시위를 벌인다고 했잖아요. 아니야, 지겨움 때문이야. 내가 말했습니다. 신문에서 자살한 노점상에 관한 기사를 읽었어. 마흔세 살. 내 나이와 같더군. 마흔세 살이란 이런 나이야. 반환점을 돌아서 얼마간 그 동안 그랬듯이 열심히 뛰어가다가 문득 깨닫는 거야. 이 길이 언젠가 한번 와본 길이라는 걸. 지금까지 온 만큼 다시 달려가야 이 모든 게 끝나리라는 걸. 그 사람도 그런 게 지겨워서 ..

[데브리북] 다자이 오사무, 사양

- 어머니는 쓸쓸히 웃으셨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울고싶어도,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아" 하셨다. 나는 어머니가 지금 행복한 게 아닐까, 하고 문득 생각했다. 행복감이란, 비애의 강바닥으로 가라앉아 희미하게 반짝이는 사금(砂金)같은 게 아닐까. 슬픔의 극한을 통과해, 아스라히 신기한 불빛을 보는 기분. 그런게 행복감이라 하면, 폐하도 어머니도 그리고 나도, 분명 지금, 행복한거다. + '다자이 오사무가 생을 마감하기 전 서른 아홉의 나이에 쓴 작품으로 그의 사상과 의식을 그대로 담아냈다. 어둠과 절망에 젖어 타락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강인한 의지와 힘, 그리고 희망을 지닌 인물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아름답고 상냥하며 유머감각과 재치를 갖춘 어머니, 현실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몰락한 특권..

[데브리북]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 그래서 그 이튿날도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어제와 다름없는 습관을 따르면 그만이다. 즉, 거칠고 큰 환락을 피하기만 하면 자연히 큰 슬픔도 오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막는 방해 공작을 하는 돌들을 두꺼비는 돌아서 지나간다. 그것이 바로 나다. 세상이 용서하고 말고가 어디 있는가. 매장하고 안하고가 어디 있는가. 나는 개와 고양이보다도 열등한 동물이다. 두꺼비. 그저 뭉그적 뭉그적거릴 뿐이다. - 불행. 이 세상에는 각양각색의 불행한 사람만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불행은 모두 스스로 자초한 죄악이므로 어느 누구에게도 항의할 수 없으며, 또 입속으로 웅얼거리며 한마디라도 항의 같은 것을 하려고 하면 넙치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 모두가, 어쩜 저렇게 말을 할 수가 있지 하고..

[데브리북] 정태익 외, 머니 트렌드 2023

구독자가 많은 경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시는 분 외 각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해서 함께 쓰신 책이라고 합니다. 저는 모르는 분이라 그냥 책 타이틀만 보고 골라서 읽었어요. 한국에서 매일 뉴스보고 접하시는 분들에게는 크게 깊이있게 각 분야를 설명하고 있지는 않아서 큰 도움이 되실지는 모르겠지만, 멀리 떨어져 있어서 한국 돌아가는 이야기를 잘 모르는 저는 잘 읽었습니다! 돈 버는 이야기 말고 최근 한국 소비자들의 소비행태와 심리에 대한 내용과 부자들의 해외 이민 관련 내용이 저는 인상깊더라구요. - 인스타그램이라는 게임과 허세 피라미드 인스타그램은 일반적인 SNS라기보다는 가상현실 게임에 가깝다. 한마디로, 온라인 가상현실 안에서 내 캐릭터를 만드는 게임이다. 인스타그램 아이디는 내 게임 캐릭터의 이름이고, ..

[데브리북] 김혜남,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30대를 앞두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던 시기에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라는 책을 읽고부터 김혜남 선생님이 쓰신 책은 거의 다 읽어봤다.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던 20대에 정말 많은 책들을 읽어봤지만 가장 공감이 되고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건 김혜남 선생님의 책이었다. 밀리의 서재 베스트셀러에 올라있길래 또 새로운 책을 내셨나 반가운 마음이었는데 오래 전에 나온 책의 20만 부 기념으로 책제목이 바뀌고 내용이 살짝 추가되어 나온거라고 한다. 한국에 있었다면 김혜남 선생님이 쓰신 책들은 직접 구입해서 오랫동안 소장하고 싶었겠지만, 캐나다에 있으니 밀리의 서재를 통해서 출간되자마자 바로 읽을 수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 - 정신분석의 선구자인 프로이트가 말한 정상의 기준을 다시 한번 들여..

[데브리북] 유현준, 어디서 살 것인가

밀리의 서재를 구독하기 전부터 차곡차곡 쌓아뒀던 저만의 읽고 싶은 책 리스트에서 하나하나 읽어가는 중입니다. 2023년엔 40권 읽기를 목표로 꾸준히 읽어나가려고 합니다. - 뉴요커가 좁은 집에 살아도 되는 이유 전 세계에서 가장 작은 집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선진국 중에서는 아마도 단위 면적당 부동산이 가장 비싼 뉴욕에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뉴요커'들의 라이프를 살펴보면 그렇게 비참하게 느겨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공간 소비의 측면에서 뉴요커들은 아주 넓은 면적을 영유하며 살기 때문이다. 집 크기는 몇 평 되지 않지만 그들은 일단 센트럴 파크나 브라이언트 파크 같은 각종 공원들이 촘촘하게 박혀 있는 도시에 살고 있다. 그리고 걸어서 그 공원들을 오가며 즐긴다. 여름철에는 브라이언트 파크..

[데브리북] 데일 카네기, 자기관리론

2023년 데브리북 첫 책은 새해와 어울리는 데일카네기의 입니다. 올해는 나이에 맞게 좀 더 성숙한 인격체로 성장하고 싶은 것이 새해 목표 중 하나였는데, 딱 타이밍에 맞게 읽기 좋았던 책이었습니다. - "현명한 사람에게는 하루하루가 새로운 삶이다". 저는 그 문장을 타이핑해서 운전 중 아무 때나 볼 수 있도록 자동차 유리창에 붙여두었습니다. 한번에 하루씩만 산다면 그리 어려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제를 잊고, 내일은 생각하지 않는 법을 배웠지요. 매일 아침 저는 이렇게 다짐합니다. "오늘은 새로운 삶이다." - 우리의 보잘것 없는 인생이란 얼마나 희한한가! 아이들은 "내가 더 크면"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말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지금보다 자란 다음에는 "내가 어른이 되면"이라고 한다. ..

[데브리북] 김난도, 트렌드 코리아 2023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읽은 트렌드 코리아. 매 섹션마다 흥미로웠던 2022년판 트렌드 코리아와는 달리 사실 올해는 좀 지루하게 읽었어요. 휙휙 빨리 바뀌는 한국의 트렌드를 따라잡기에는 여유롭고 느긋하기만 한 캐나다 삶에 너무 익숙해진 탓일까요? 게다가 새로운 개념이 나올 때마다 굳이 영어로 이름을 붙이는 게 저는 참 반갑지 않더라구요. 이건 가끔 한국 뉴스를 볼 때도 마찬가지예요. 한국어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거나 그 느낌을 살릴 수 없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영어 단어를 그대로 가져와야하겠지만, 괜히 더 어렵고 어색하게 굳이 영어단어를 그대로 한국발음대로 풀어쓰는 이유가 무엇인지? 예를 들면, 유일하게 페이스북에서 챙겨보고 있는 JTBC인데 굳이 사례비나 뇌물이라는 단어를 두고 리베이트라고 써야하는 이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