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배우고 생각하고/밑줄긋기 58

[데브리북] 나의 블랙 미니 드레스

- 물론 민경도 우리 또래에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남자들은 사시 1차에 합격한 것만으로도 이미 성공한 것처럼 들리는 반면, 여자는 어느 남자와 결혼하는지 끝을 봐야지만 비로소 성공이란 단어를 붙일 수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성별을 기준으로 여자를 차별하는 것은 여성 또한 마찬가지다. 이 편견도 결국 여자가 만든 것이다. -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두렵게 하는지, 또 미치게 하는지,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일까? 나는 나의 부모 세대와는 다르게 모든 것을 지원받으며 커왔다. 어느 집의 귀한 자식으로 갖고 싶은 것도 갖고 하고 싶은 것은 하면서 자랐다. 그러나 결국 이것밖에 안 되는 딸이 되어버렸다. 그 창피함과 미안함과..

[데브리북] 요시모토 바나나, 그녀에 대하여

- 언제나 비행기든 차든 전철이든 타고 싶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고, 자신이 떠다닌다는 것을 잊을 수 있다. 이동을 시작할 때만 좋다. 목적지가 가까워지면 조금은 우울해진다. 또 지상으로 내려가 그 속의 시간에 발을 들여놓아야 한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소용돌이치고 있고, 나는 그곳에 조금씩 포박되어 무언가를 받기도 하고 또 빼앗기기도 한다. 그런 것이야말로 삶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이 싫다.

[데브리북] 에쿠니 가오리, 홀리 가든

내 20대 최애 작가 에쿠니 가오리. 어떨 땐 사놓고 아껴두고 읽기도 하고, 좋아하는 책은 친구들에게 선물하기도 했을 만큼 당시 애정했던 그녀의 소설들. 일본 소설의 인기가 엄청났던 당시의 분위기도 있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연애와 친구 관계 등이 지금보다 훨씬 중요했던 20대의 말랑말랑한 감성에 딱 맞는 류의 글들이라 그 시기에 공감하며 읽기 좋았던 것 같다. - 결국, 감정적으로 처신하는 쪽이 지는 것이다. 불필요한 호의가 사람을 감정적으로 만든다. 시즈에는 오카야마에서 늘, 부상을 입고 귀환하는 병사처럼 애처롭게 돌아온다. 그런데도 본인은 그렇다는 것을 모른다. 정말 즐거웠어, 라고 시즈에는 말했다. 꿈같았어. 지금 신칸센 타고 올라가는 중이야. 돌아가기 싫을 정도다. 가호는 연애 따위의 성가신 일에..

[데브리북] 김미나, 오늘도 디지털 노마드로 삽니다

여행 정보 검색하다가 네이버 블로그로 먼저 알게되었고, 어떻게 부부가 이렇게 오랫동안 여행만 하고 지내게 된건지 궁금해서 출판된 책까지 읽어보게 되었다. -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사람을 만나 비슷한 대화를 하고 비슷한 날들을 보내다가, 여행을 시작한 뒤 다양한 형태의 삶을 만났다. 세상은 넓고 삶의 모양은 셀 수 없이 다양했다. 그것은 언제나 비슷한 루틴으로 살던 우리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직업이 여러 개인 사람, 여행하면서 일하는 사람, 은퇴하는 나이에 전혀 다른 일을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들을 가까이서 보며 이렇게도 살 수 있고 저렇게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저렇게 살아도 망하지 않는구나! 굶어 죽지 않는구나!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면서도 굶어 죽지 않고 잘 사는 사람들을 보며..

[데브리북] 안도 다다오,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 설계사무소라는 작은 조직인 만큼 젊은이들을 나쁜 의미의 월급쟁이로 방치하고 싶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대기업의 직원이라도 된듯이, 즉 '누군가 하겠지', '상사가 책임지겠지' 하며 남한테 기대거나 책임 소재를 모호하게 하는 태도는 허용할 수 없다.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순서를 정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전진해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렇게 책임을 완수하겠다고 각오하는, 그런 강력한 개인들의 집단이기를 바란다. - 마지막에 경유한 인도에서는 이상한 냄새와 뜨거운 태양아래 인간의 삶과 죽음이 혼재된 풍경을 보면서 인생관이 바뀔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갠지스 강에서 목욕하는 사람들 바로 옆으로 다비를 마친 시체가 떠내려갔다.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하찮은지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산다는 것은 무엇..

[데브리북] 루이 페르디낭 셀린느, 밤 끝으로의 여행

- 길, 그것은 끝이 없는 슬픈 상처, 우리들을, 또 각양각색의 고통을 양쪽 변두리로 넘치도록 담은 채, 이 세상의 모든 길과 마찬가지로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 길, 그것은 끝이 없는 슬픈 상처, 우리들을, 또 각양각색의 고통을 양쪽 변두리로 넘치도록 가득 담은 채, 이 세상의 모든 길과 마찬가지로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 기차가 역 구내로 들어왔다. 그 기계 뭉치를 보는 순산, 나는 내가 감행하려는 그 모험에 대해 별로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나는 나의 몸뚱이라는 그 껍데기 속에 남아있던 용기를 총동원하여 몰리를 포옹하였다. 나는 처음으로 진정한 아픔을 느꼈으며, 그 아픔은 모든 사람들과 나 자신, 몰리, 아니 인간 모두에게로 향한 가슴속의 아픔이었다. 인생이라는 기나긴 역정을 헤쳐 가며 우리가..

[데브리북] 김난도, 아프니까 청춘이다

- 중요한 것은 시련 자체의 냉혹함이 아니다. 그 시련을 대하는 나의 자세다. 그 시련이 가혹한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것은 결국 오롯이 나다. 내가 힘들게 받아들이면 힘든 것이고, 내가 의연하게 받아들이면 별것 아닌 것이다. 그대는 지금 그대의 시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 바빠야 하고 싶은 일의 소중함이 비로소 절실해진다. 더욱 중요한 점은 바빠야 생활이 치열해져 시간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시간이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가할수록 쓸 수 있는 시간은 더 생길지 몰라도 치밀한 자기관리의 의지가 함께 줄어들기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 이 책을 검색하다보니 '아프니까 청춘이란 말 듣기도 싫어' 라는 책도 나왔을 만큼 전국민이 들을만큼 ..

[데브리북] 정이현, 너는 모른다

- 인생에는 한들한들 부는 산들바람에 뭄뚱이를 맡겨도 되는 시간이 있다. 스무 살, 스물한 살, 스물두 살... 삶이란 조금 비스듬히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기차에서 시속 오십 킬로미터의 속도를 견디는 일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나이이기도 하다. ... 우주가 그들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착각한 건 아니었다. 울타리 너머의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뿐이다. - 그는 일체의 단체활동에 참가하지 않았으며 거기에 관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다. 밍은 생래적으로 하나의 개인이었다. 결코 외톨이인 줄 모르는 외톨이, 빛 없는 선반 위에 따로 보관된 통조림처럼 안전하고 유일한 개체, 스스로 적막할 운명을 타고난 자. 그것이 밍이었다. 혼자 먹을 저녁밥이 담긴 검정 비닐봉지를 천천히 흔들면서 어둑한 타이..

[데브리북] 전경린, 엄마의 집

- 그러나 지금 와서 보면 생존을 택한 친구들도 꼴이 한심하기는 마찬가지예요. 꿈은 상실되고 자신을 돈과 바꾸어 살아야 하니, 삶 자체가 하루하루 이렇게 소모적이기만 한 건가 싶죠. 참 다들 고독하고 가련해요. - 우린 무언가를 할 때마다 실패도 하고 상처도 입고 후회도 하지. 마음이 무너지기도 해. 사는 동안 몇 번이고 마음이 무너지지. 하지만 중요한 건 다시 하는 거야. - 행인들의 생이 단단하고 차가운 표면 위로 영원을 향해 미끄러지는 것만 같았다. 나의 생도, 엄마의 생도, 풍경들도... 아무리 파고들고 싶어도 빙판 위의 스케이트처럼 속수무책으로 미끄러져서 사라져가는 것이었다. 난 몸부림치며 그 무엇엔가 깊이 파고들고 싶었다. - 겉보기엔 비슷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저마다 건너야 할 인생의 ..

[데브리북] 김혜남,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 선택할 게 많다는 것은 복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것 중에 선택을 하라고 하면 그건 저주가 된다. 왜냐하면 한가지를 선택하기 위해서 나머지 것들을 포기해야하기 때문이다. 그 많은 유혹과 가능성을 포기하고 선택한 것이 최상의 선택이라고 누가 확신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다른 선택이 더 옳았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이제 사람들 눈에는 자신이 선택한 한 가지보다 포기한 수많은 것이 아른거린다. 더 행복했을지도 모를 다른 가능성에 대한 미련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우울해한다. 가지 않은 길을 쳐다보느라 가야 할 길을 못가는 형국이 되는 것이다. - 삶에서 권태로운 시간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바쁘게 일하다가 잠시 빈둥거리며 지루해하는 것과, 모든 것에서 의미를 찾기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