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작가라도 타이틀에 눈길이 가고 읽고싶다는 생각이 들면, 비슷한 인지도의 작가가 쓴 실제로는 더 잘써졌을지도 모르는 타이틀이 평범한 책들보다 독자들에게 읽힐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같다. 한동안 베스트셀러였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라는 책도 타이틀의 덕을 톡톡히 본 게 분명하다.
<어쩌다 어른> 이라는 프로그램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 책이 나온 게 2015년이니 아마 그 타이틀은 이 책에서 먼저 온 게 아닌가 한다.
연말부터 계속 읽고 싶었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고 있는데, 훨씬 분량이 많기도 하고 한번에 소화시키기 쉽지 않은 책이기도 해서 읽는 도중에 쉬어가려고 가볍게 읽기 쉬운 책을 찾고 있었다. 타이틀도 매력이 괜찮고, 요즘 또다시 정말 잉여롭게 보내고 있는 내 상황에 맞는 것 같아서 밀리의 서재에서 바로 다운받아 읽기 시작했는데 중간중간 소리내서 웃을 만큼 재밌게 읽었다. 읽기 전에 훑어봤을 때 을로 사는 법, 예쁜 것들은 좀 닥쳐줄래, 인기 없는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어쩌다 싱글 같은 카테고리랑 소제목들만 봐도 벌써 재밌을 것 같았다. 나도 일본에 살아본 적이 있고 일드를 많이 봤던 시기도 있어서 공감되는 내용도 많았고, 중간중간 나오는 삽화들도 귀엽고 매력적이다.
선배 중 하나가 말했다. "우정은 연금보험 같은 것"이라고.
길고 힘겨운 시간을 함께 보낸 내공으로, 쓸쓸하다 싶을 때 신기하게도 "요즘 어때?라고 말을 걸어주는 친구들. 나의 부족함을 세상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섣불리 평가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친구들. 삶의 골짜기에 어이없이 처박혀 울고 있을 때 다시 세상으로 끌어내줄 친구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앞으로도 꽤 길고 지루하게 이어질 이 삶을 그들 없이 꿋꿋하게 버텨낼 수 있는 방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아, 인간은 도대체 왜 하루 세 끼를 챙겨 먹어야 하는 존재인가라는 존재론적 회의와 함께, 나만 외롭게 이 도시를 견디고 있는 건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눈은 재빠르게 메뉴판을 훑으며 '어디 오늘은 조미료의 풍미가 일품인 순두부로 해볼까나' 웅얼거리게 되는 것이다.
흠, 이부분은 사실 좀 반대였는데 나는 모든 사람에게는 본인이 더 나은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환경이 있는 나라나 도시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라나 도시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성향과 가치관도 다르기 때문에 오랜 시간 여행을 해보거나 살아보면 그 도시가 나와 맞는 곳인지, 아니면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게 만드는 곳인지를 알 수 있다. 분명 장소에 따라 나를 더 적극적이고 의욕에 넘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곳이 있고, 한없이 게을러지고 나태해지게 만드는 나라와 도시가 있다. 하루종일 나가서 걷고 모르는 사람들과도 쉽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게 만드는 곳이 있다면, 머무는 곳 밖으로는 나가고 싶지도 않고 타인과 말도 섞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기 쉽도록 만드는 환경도 분명 있기 때문에 나는 내가 사는 장소에 따라 내 성격과 성향이 크게 좌우되는 편이다.
한국에서 행복하지 않았던 데는 그 사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과 본인이 가치있게 여기는 부분이 달랐기 때문이라는 것을 캐나다에 와서 깨닫는 유학생들이 정말 많다. 또 캐나다에서 이방인처럼 겉돌며 지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가서야 본인을 되찾았을 수 있었다는 이민자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을 만큼 모든 사람은 다르고 각자에 맞는 환경 또한 각기 다르기 때문에, 한 곳에서 행복하지 않다면 다른 곳으로 도시나 나라를 바꿔보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서울 토박이들이 제주도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 훨씬 더 행복해졌다는 이야기만 해도 얼마나 많은가- 캐나다만 해도 벤쿠버에 사는 사람들과 토론토에 사는 사람들이 가진 삶의 가치관과 성향은 같은 캐네디언이라도 하늘과 땅이다.
이 책은 20대 보다는 30, 40대 싱글 여성이 훨씬 더 공감하며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매일을 어떻게 하면 더 생산적으로 보낼까라는 바른생활 루틴이들보다는 게으르고 잉여로워도 괜찮아라는 마인드로 살아가는 분들이 좋아하실만한 책!
'읽고 배우고 생각하고 > 밑줄긋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데브리북] 김호연, 불편한 편의점 (0) | 2022.01.27 |
---|---|
[데브리북]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0) | 2022.01.24 |
[데브리북] 김난도, 트렌드 코리아 2022 (0) | 2022.01.02 |
[데브리북] 팀 페리스,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0) | 2021.12.18 |
밀리의 서재 📚 월 12,000원 말고 9,900원으로 구독하는 법 (벼르고 벼르다 드디어 구독!) (0) | 2021.10.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