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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브리북] 김선우,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데브리 2023. 5. 14. 05:24

 

 

 

김선우,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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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드는 것이 참 좋다, 라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예쁜 구석이 잘 보여서 좋고 몰아붙여야 할 때와 쉬어야 할 때를 비교적 잘 감각할 수 있게 되어서 좋다. 청춘의 시절에는 자주 속았다. 사랑도 분노도 절망도 바닥까지 몰아가야만 직성이 풀리고 고통스러워도 그래야만 진짜라고 생각했다. 진이 빠질때까지 울며 뛰며 소리치며 스스로를 닦달했다. 스스로 경계 지어 놓은 진짜와 진짜 아닌 것들이 너무 많아 그것들을 판독하기에만도 늘 시간이 모자랐다. 하긴, 청춘은 그래야만 또한 청춘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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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사랑이 남아 있어 사람들은 여행을 떠난다. 다행이다. 조금씩, 눈물 만큼일지라도, 조금 조금씩, 우리는 행복해지고 싶은 거다. 산다는 게 영 녹록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우리의, 갸륵한 수고. 아,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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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현란해지는 이 시절에 우리의 삶의 방식은 점점 더 다채로워지는 게 아니라 왜 더 획일적이 되어 가는 것일까. 언제부터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나의 욕망'으로 착각하며 살게 된 걸까. 지금 우리 사회는 주체의 과잉이 문제라기보다 주체의 실종이 문제인 것은 아닐까. 휘황한 거리에는 '나'라는 광고 문구가 넘치건만 왜 갈수록 나를 잃어버리며 산다는 느낌이 드는 걸까. 나의 실종에 불안하면서도 남들 사는 대로 살지 않으면 또 다른 불안이 엄습하는 기이한 닫힌 회로. 출구 없는 일상의 쳇바퀴로부터 어떻게 '나'를 찾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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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잘 감당하는 사람, 고독을 잘 즐기는 사람이 좋다. 자신의 고독의 무게로 다른 사람까지 무거워지게 하지 않는 삶이 나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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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학교란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는 내내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과정이며 궁극적으로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길고 긴 과정이지 않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성적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해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말랑말랑한 감수성과 상상력을 지닌 12년을 성적관리와 시험공부라는 딱딱한 갑각 속에 스스로의 영혼을 차압해두어야하는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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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이들은 예쁘다. 지상에서 제일 힘이 센 사람들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다.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깊은 친밀감과 마법같은 일체감. 사람이 긴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사랑의 감정이 있기 때문일 터. 사랑이 없다면 인생은 얼마나 지루할 것이냐. 사랑하지 않는 순간은 손해다. 설령 사랑 때문에 누가 아프게 될지라도 사랑에 빠지는 것이 남는 장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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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한 우물을 파라'는 격언이 통한다. 한 우물을 파라는 것은 한 우물을 팔 때 성공률이 높기 때문일 터. 그런데 말이다. 의학의 발달로 인생은 점점 길어지는데 평생 한 우물만 파는 것은 지겹지 않겠는가. 한 우물만 파도 지겹지 않은 유일한 종류가 있다면 예술 분야일 거라고 나는 생각하는 편이지만,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예술도 한 분야만 파고 살면 지겨울 때가 있어서 장르 넘나들기의 혼종양식이 자꾸 생겨나는 거 아니겠는가. 그러니 인간에게 한 우물만 파기를 종용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매우 위배되는 슬로건인 게다. 한 우물만 파도 성공하기 어려운데 여러 가지 집적거리다 어찌 하겠냐고, 사람들은 또 걱정한다. 그래도 나는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즐기는 삶이 더 근사해 보인다. 무엇을 하든 예술과 멀리 떨어져 살 수는 없을 것이므로 (예술은 산소다!) 그림 그리는 농부, 음악하는 어부, 교사이면서 로커, 목수이면서 종교인, 헤어디자이너면서 영화 감독, 청소부이면서 첼리스트, 뭐 이런 일들의 조합들이 떠오른다.
안정적이 된다는 것은 정체된다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안정적이 된다는 것은 생활이 편안해진다는 장점을 제공하는 동시에 정신의 고양을 지체시킬 수도 있다는 단점을 내포한다. 정신의 부패가 발생하고 세속적인 탐심이 생기기 쉬운 지점이기도 하다. 탐험이 정지된 삶의 권태와 싸워야 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평생 몸 담은 분야의 지식과 기술은 늘어도 가슴 두근거리는 삶을 놓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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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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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 나는 싫다.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해 살다가는 주어진 현실만큼 타락하기도 일쑤이니.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한하는 것은 주어진 현실을 혁명해야 하는 시점에 대해 열렬히 깨어 있는 자세와 함께 요구되어야 할 일이다. 삶은 여러 번 지속되겠으나 지금 삶은 한 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