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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브리북] 변종모,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데브리 2023. 5. 21. 03:37

 
 

변종모,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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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면 어떤 기분인가요?"라고 누가 묻는다. 
"반쯤 불안하고 반쯤은 행복하지요"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다시 말한다. 
"불안하지 않으면 행복하지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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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잘해야 일 년에 한두번 보는 것이 전부였다. 몇 번의 연락을 받은 끝에 선심 쓰듯 겨우 작별 인사를 하러 나간 자리. 그것도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뤄뒀던 시간을 만회하려는 얄팍한 계산이 있었는지 모른다. 떠난다는 이유로 용서 받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언제 봐도 좋을 사람이라는 편리하고 이기적인 생각이 컸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대부분의 소중한 인연들을 우연히 길에서 스치는 사이보다 못하게 꾸역꾸역 이어나간다. 시간이 아닌 마음이 없던 것인지도 모른다. 산다는 것을 핑계로,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정작 내 삶의 어느 한 부분들을 아름답게 채워준 것들을 외면하고 사는 일. 그것을 또 외면하고 나는 자주 아름다운 것들을 기대하며 길을 나섰다. 내 곁에 소중한 많은 것들을 외면하고 나선 내가 먼 길에서 만나는 낯선 것들을 어찌 소중하게 여기며, 그 인연을 어찌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반짝하고 잠시 마주하는 것에만 열광한 채 늘 가슴에 두어야 할 것들을 머리로만 생각하며 살았다. 나는 자주 그런 식으로 내가 나를 소외시키며 살았다. 가끔 먼 곳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만나도 허전했던 이유, 그것은 그곳에서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마땅히 생각해낼 수 없어서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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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바람 불면 사라지고 마는 것. 지금 나의 것도 아니고 앞으로 당신 것도 아닌 것. 그 무엇도 사랑 앞에서 단언하지 못하고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조금의 애틋함으로 서로의 현재를 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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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와서 하릴없이 배회하는 나의 시간들과 밤낮 과중한 업무에 취해서 자기 발끝 한번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일은 무엇이 다를까? 내가 별일 없이 동네를 배회하는 동안 당신은 별일 없이 바쁘게 일을 하며 천만 원 정도 더 모으는 정도. 그 정도의 차이가 아닐까? 그러다가 내가 천만 원이 필요하면 당신이 잠시 부러울 것이고, 당신이 지친 어느 퇴근 길에 문득 떠나온 나를 떠올릴 때면 잠시 내가 부러워지는 정도. 그 정도가 아닐까 한다. 먼 훗날 문득 돌아보면, 지난 일은 모두가 별일 없는 일들의 연속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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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행복해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 것이라 믿고 싶다. 여행을 가는 일, 생활을 지키는 일, 모두가 별일 아닌 시간의 또다른 형태일 뿐. 그러니 그 별일 없음도 귀히 여겨 늘 현재를 별일처럼 특별하게 살아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나의 별일 없음에 감사한다.